제목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 참여작가 및 작품 발표 기자회견자료_감독의 변

감독의 변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승 효 상 (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

 

2,500년 전 중국에 살았던 노자는 도덕경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동양사상의 형성에 막대한 공헌을 하였다. 도를 깨달아 덕을 얻는 내용으로 된 도덕경은 서른 세 장의 도경(道經)과 마흔 네 장의 덕경(德經)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도경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이 도덕경 전체의 내용을 암시한다. 이런 글귀이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길이라 부르는 길이 다 길이 아니며, 이름이라고 하는 이름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라는 이 문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리나 법칙 그리고 지식의 체계나 현상들이 진실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요즘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마치 시대의 화두가 되어있다. 성장한계에 부닥친 기업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디자인에서 찾고, 모든 지방자체단체들이 도시 디자인을 최우선의 정책으로 삼아 골몰하는데,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디자인에 대한 본질을 알고 그 많은 전략과 정책을 생산해 내는 것일까? 여러 곳에서 실제 진행된 디자인의 실상을 보면서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겉가죽의 분칠에 몰두하고 몇 가지 세련된 집기의 설치로 디자인이 다 되었다고 우기는 게 그렇다. 세계의 디자인과 문화의 중심은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춰 급속히 변모해 나가는데, 우리만 '세계디자인수도'니 '아시아문화중심도시'니 하는 레토릭으로 자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삼성이나 엘지가 그토록 휴대폰 사업에 몰입했어도, 애플은 아이폰을 내세우며 압도적 격차를 만든 게, 바로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정의로 거둔 승리였다.

디자인은 19세기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형성된 대량의 공업 생산에 근거해서 세계 시장 속에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제품이나 오브제를 제조하여 배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종래의 미술이나 건축 공예처럼, 그전까지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소수의 특권층만 즐기던 디자인 오브제가 대량 유통되어 누구나 즐길 수 있게 되면서 권력과 상상력의 문명사적 변혁을 가져왔으며, 결국 이는 근대성의 자각을 이룬 20세기의 미학적, 기술적 그리고 경제적 구심점이 되었다. 디자인이란 그 자체로서 근대를 상징했으며, 그 공급자와 디자이너의 파워는 대단한 권력이 되었다. 제품의 실질적 가치와는 관계없이 그 이름만으로도 높은 가격이 형성되는 소위 명품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도 이만저만하게 바뀐 게 아니다. IT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환경으로 디자인은 전문적 영역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공급자 편의대로만 생산하는 방식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어느 장소에서나 유효했던 디자인이 특별한 장소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즉 디자인에 대한 주체와 객체가 불분명해졌으며 다중의 보편성보다는 소수의 특별함이 우선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디자인의 유효기간도 지극히 단축되어 매일 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 디자인 오브제가 가졌던 전통적 권위가 사라진 것이다. 서구에서 형성된 20세기의 디자인 관념으로는 변화무상한 이 미디어테크놀로지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바야흐로 디자인은 새로운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올해의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를 정하면서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들추었다. 현상에 대한 의문이 들 때나 환경이 변할 때 그 근본을 다시 묻는 것은 그 변화의 정체를 모른 체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그 흐름을 움켜질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道)를 그림이나 디자인을 뜻하는 다른 한자인 圖로 바꾸어 '圖可圖非常圖'로 주제를 정하였다. '디자인이라고 일컫는 디자인이 다 디자인이 아니다.'라는 뜻이 된다. 2,500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지금 이 현자의 명구가 절박하다.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 지금 이 혼돈의 디자인시대에 우리 모두를 성찰하게 하는 절실한 주제어라고 믿는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키워드를 가진다. 즉 '이름'과 '장소' 가 그것이다. 전 시대부터 우리의 환경에 권위를 가지고 등장한 '이름있는 디자인(named design)'과,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지만 분명히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이름 없는 디자인(unnamed design)'의 구분이 가능하며, 마찬가지로 '장소성을 가진 디자인(placed design)', '장소성이 없는 디자인(unplaced design)'으로 디자인을 나눌 수도 있다. 특히 이번 디자인 비엔날레에서는 광주의 도시성에 착안하여 '광주폴리'라는 도시공공시설물을 디자인하게 한다. 더불어, 어떤 특정 단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커뮤니티'라고 하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전체 네 개의 전시섹션으로 구성할 수 있다.
이 네 개의 전시섹션은 과거의 관습적인 디자인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고, 마치 신문의 카테고리처럼 나열되나 모두 섞여있다. 그래서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특별한 도시(biennale city)가 되어 방문객은 마치 디자인 도시를 소요하는 것처럼 그 장소성을 강조하게 된다.

전시는, 디자인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도록 자극을 주며, 이 변화하는 시대에 우리의 디자인 환경을 사유하게 한다. 결국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를 모두에게 묻는 것이 올해 제4회를 맞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목적이 된다.